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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s비소리 2014. 11. 28. 08:36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정호승   

저는 별을 좋아합니다. 달도 좋아하지만 별을 더 좋아합니다.
달이 은근하고 포근한 누님 같다면 별은 다정한 형님 같습니다.
달빛이 인자한 어머니의 빛이라면 별빛은 왠지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의 빛이라고 생각됩니다. 
달빛은 마냥 따스하게 느껴지는 데 비해 별빛은 
따스하지만 다소 차가운 느낌을 줍니다. 
그 차가움이 들뜨기 쉬운 마음을 들뜨지 않게 하고, 
때로는 사물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시인의 빛이 있다면 달빛보다는 별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밤길을 걸어가다가 달을 바라볼 때보다 별을 바라볼 때 
더 살아 있다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말없이 뜬 초승달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때도 있지만, 
막 어둠의 옷을 입은 검은 산 위로 떠오른 별들한테서 생존의 감각을 더 느낍니다. 
달은 초월의 표상인 듯해서 오히려 더 멀리 느껴지지만, 
별은 희망의 길로 인도해주는 구원자인 듯해서 언제나 손을 뻗치고 다가가고 싶습니다. 
달이 감성적이라면 별은 이성적인 것이 아닐까요. 
달이 슬픔이라면 별은 그 슬픔을 껴안고 일어서는 기쁨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달은 매일 변하나 별은 변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제 어른쪽 팔뚝엔 까만 점이 많습니다. 
그 점들 중엔 흡사 북두칠성과 북극성 모양을 지닌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팔뚝을 내려다보며 혼자 빙그레 웃을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몸에 있는 점에서도 별자리를 찾으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 제가 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릴 때 평상에 누워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대학생이 되어 뒤늦게 읽은 
『어린 왕자』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이야말로 지구라는 별에 사는 ‘어린 왕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별을 바라보는 일도 젊은 청년 시절에 바라보는 것과 나이가 든 지금 바라보는
것과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을 때 바라본 별빛은 마냥 푸르고 날카로웠으나, 
지금 50대 중반이 넘어 바라본 별빛은 은근히 붉은빛을 띠고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별을 바라보아도 쓸쓸함을 느꼈으나, 
이제는 별을 바라보아도 쓸쓸하지 않습니다. 
쓸쓸하다가도 별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에 위한의 빛이 찾아옵니다. 
저는 이제야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제야 내가 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별이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별들이 왜 어둠 속에서 빛나며 그걸 아는 데에 평생이 걸리는지, 
왜 제 인생의 어둠이 깊어져야 별이 더 빛나는지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좌절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등등 
인간의 수만큼이나 밤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을 애써 피해왔습니다. 
가능한 한 인생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지 않으면 별이 뜨지 않습니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밤이 없으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활짝 피어난 꽃은 어두운 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도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웁니다.
신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눈동자의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했을까요?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어둠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밝음을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별은 밝은 대낮에도 하늘에 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 별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어두운 밤에만 그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통해서만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듯이, 
밤하늘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별을 바라볼 수 있듯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내 삶의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캄캄한 밤, 그것이 비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일지라도 
그 밤이 있어야 별이 뜹니다. 
그리고 그 별들은 따뜻합니다. 젊은 날에 제가 쓴 시「별들은 따뜻하다」를 다시 읽어봅니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 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흐르는 곡 : 바람  / 박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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